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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집이 내 두배정도 되는 아프로아메리칸 여성 두명과 살게되었어.
그녀들은 매일매일 내가 집에 돌아가면 꼭 안아 반겨줘.
숨이 터질 것같이 말이야.
늦게 갈수록 더욱 꼭 안아줘.
그녀들과 집앞에서 곧 사진찍어서 보여줄게.
클렘이 떠난지 족히 한달은 된것같다.
-햇볕이 매일 쨍쨍하고, 런던처럼 다들 바쁘게 살지 않아. 다들 더 행복해보여.
그리 말하는 그도 얼굴이 좀 탄것 같다.
화면을 통해서지만 얼굴을 보는 것도 근 한달만인것 같다.
- 미디어랩 내부좀 보여줘봐.
궁금해서 부탁하자마자 그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나를 구경시킨다. 스카이프로.
좋은 세상이다.
그가 전에 약속했던 것을 지켜주는 중이다.
런던에있든, 베를린에, 서울에 혹은 보스턴에, 아니면 달에 있든.
함께일거라고.
- 너 없이 'invisible'전시 갔다왔어. 며칠전에.
나는 논문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순순히 말한다.
사실 자꾸만 테두리를 돌아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invisible전시를 보고나서는 곧장 그가 보고 싶었다.
그와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았다.
나는 곧장 인간의 아이덴티티의 '모호성'을 시스템화 하는 것과
사회에서 평가되어왔던 '경계인'의 의미가 혼합된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해서 질문한다.
'보이지않는' 것과 '모호한' 것은 의미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 논문에서 그를 어떻게 함께 풀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얼마전에 서울 아트센터 나비와의 인터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인터뷰 내용이 꽤 길어서 많은 시간을 들여야했지만, 나를 돌아보기에 좋았던 인터뷰였다.
-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는데, 나 2학년때 정말 웨어러블 작업 다시해야겠어.
내가 말한다.
- 지금 하는 리서치가 정말 느리게 가고는 있지만,
중간과정에 무엇이 있는지 알수 없이, 그저 나비들이 머리속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지만,
내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와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작업을 어떻게 섞어 낼 것인가는 나한테 달린거잖아.
너는 지금 '재료'에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잖아.
분명 니가 원하는 작업이고, 네가 잘하는 거니까.
나 알고보니 7년이나 벌써 웨어러블 작업전선에 뛰어들어 있었어.
분명 내가 좋아하고 하고싶었던 작업이야.
RCA에 와서 머뭇거렸던 것은, 작업을 방향을 이미 정해놓고 주제를 정하기 싫었기 때문이었어.
이번 인터뷰때 느꼈어.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하고 이것을 향해 걸어왔는지.
클렘에게 고백하듯 털어놓고 나니 속이 왠지 시원하다.
작업이야기를 할때, 그는 더욱 빛이 되어주니 나는 힘을 얻는다.
차차 생각해야할 부분이라고 미뤄왔지만, 여름은 빠르게 가고있다.
이번 여름에 해야할 것들이 산더미임에 분명한데 나는 아직 출발선에서만 맴돈다.
이 '모호함'이 어떻게 이야기 되어야 할지, 실을 풀어야 매듭을 지을 수 있다.
이야기는 '나'로 부터 시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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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나를 보면 부러울때가 있다.
왠지 내가 너무나도 치사한 인간이거나 부정적인 인간으로 보여지는 것같아서 화가 나기도 한다.
나는 인생은 살만한 것이지만.그렇게 행복하기만 하진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나는 다르다.
뭔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늘 들떠있다.
그것은 어리거나 순진한 마음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그녀보다 5살이나 많기때문에 더 세상에 의해 탁해진것일까.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 행복한 삶이야. 너는 그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여기에 있잖아.
너는 분명 행복한 삶이야. 다른이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누리고 살잖아.
그녀가 말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니가 뭘 아느냐고 묻고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오른다.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반박했다.
불쌍한 사람들과 내 삶을 비교하면서 그들을 동정하며 사는 것은 옳지 못한일이야.
칼에 손끝을 베였을때 '아프다'라고 느끼는 것은 분명 총상을 입었을때의 아픔과는 다른 것이겠지.
그것은 '다른'것이지 아픈것을 부정해야하는 것은 아니야.
아픈 것은 아픈 것이야.
내 삶이 겉보기에 좋아보여도, 그렇다고 내가 속앓이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아파.
나는 행복해.
하지만 나는 아파.
나는 괜찮아.
하지만 때론 안괜찮아.
이게 내 인생이야.
인생은 그런거야. 그냥 아프고, 행복하고, 슬프고 안행복하고, 또 괜찮기도하고 안괜찮기도해.
나는 대답한다.
하지만 속으로 더욱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수없다.
아픈 곳을 찔려서 화가나는 것인지.
아니면 순진하리만큼 행복해하는 그녀의 말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어서 화가 나는 것인지.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알수가 없다.
우리는 대화를 중단했다.
어쩌면 네 병때문에 네가 그리도 예민한가봐.
그녀는 재빨리 돌아선다.
내 병은 나의 약점이 아니다.
내가 아픈 사람인 것을 잊으리만큼 난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성적으로 인생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면서 살고있다.
그녀의 말은 모순이 있다.
인생을 잘 알수록 행복하다는 말을 뱉어놓고,
내가 내 병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넌 아프니까 예민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녀는 '아픈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왜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게하지.
왜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모자란 인간인 것처럼 치부되지.
너도 분명 선을 긋잖아.
내가 너무 부정적이라고.
행복하게 살아도인생은 짧은데 왜이렇게 부정적이냐고.
그것은 편견이고 오만이잖아.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무지에서 드러나는 쓸데없는 생각들과 논쟁을 하는 것은
시덥지않은 것임을 알기때문에.
나는 입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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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렘이 보고싶다.
이렇게 화나는 일이 생길때마다 나는 그를 찾는다.
그는 분명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속안에서 일고 있는 분쟁이 무엇인지 그는 현명하게 내게 답을 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이 감정을 다스려야하는지.
내가 요즘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분명 그에게는 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왼쪽뇌가 저릿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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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을수록, 더욱 꼭 안아줘.
클렘의 새 플랏메이트들처럼.
나도 그럴생각이다.
왜 이제왔느냐고 가슴팍을 치겠지만.
니가 늦을수록, 난 더욱 꼭.
그럴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