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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어쩐일이니.

2020. 11. 20. 02:15 from ++

갑자기 문득문득 떠오를때가 있다. 

니가 어쩐일이니. 그렇게 말하던 e의 얼굴. 

 

그녀는 내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했을때 선뜻 나를 도와주겠다며

불어에 불도 모르던 나에게.

불어사전도 사주고 불어기초도 가르쳐주었다.

분명 따듯하고 좋은사람같았다.

 

나는 빠리에서 상처받았고.

외로웠고.

용감해졌다.

 

그녀가 빠리를 방문했을때

나를 만나러 들러주었을때.

나는 그 따듯함에 또 감동하고.

그녀의 좋은 친구들을 소개해주었을때.

감사했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하고.

 

나는 어렸고. 

투정부리고 싶었고.

나를 예뻐해주는 그녀의 친구들이 좋았다.

차갑고 외로웠던 빠리에서 흔히 만나지 못했던 좋은 느낌이었다.

 

행여 내가 선을 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친구들에게 무례했을지도.

혹은 그 친구들을 소개해준 그녀에게 무례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집 바로 건너편에서.

녹차 세러머니를 한다는 단체메일을 보고.

꽃 사들고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간 나를 본.

그녀의 첫마디.

니가 여긴 어쩐일이니.

언니. 

그렇게 부르는 나를 대하는 차가운 얼굴.

축하드려요.

그렇게 그 꽃들이 휴지통으로 들어갈 것같은.

뭔가 내가 대단히 실수 한것같은 느낌을 뒤로하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몇년이 지나고.

그녀의 친구들을 또 만나게 되었지만.

뭔가 어른스럽게 대처하지 못한 기분이다.

아 망했다.

그녀가 이 소식을 들으면 나를 더욱 싫어하겠구나. 했다.

어짜피 끊어진 인연이지만.

왠지 더 폭망한 느낌.

 

근데 뭐가 망했단 말인가.

잘 생각해보면.

내가 뭔가 대단히 잘못한거같기도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또 억울하다.

교환학생을 가기전에 그녀가 내가 지내던 오피스텔을 서브렛 하고 싶다고 했을때도.

난 그녀가 호의적이라고. 

내가 8개월간 집세를 그저 버리지않게.

혹은 방을 빼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호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녀도 나를 이용한게 아닌가.

그 집세의 절반은 내가 내었고. 

내 가구며 물건들은 모조리 치워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서브렛 조건은 거의 밑지는 장사였다.

그녀도 내게 얻는것이 있었고.

나는 그렇게 얻는것도 많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호의가 결국 일방적인게 아니었는데.

나만 늘 감사했다.

뭔가 틀어져서 내게 냉랭하게 멀어졌을때도.

나만 죄스럽고 속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많이 억울하다.

그녀가 계속 내게 좋은 사람이었음 좋았을것도 같다.

그렇게 잃어버린 관계들이 그동안 아쉽지 않았는데.

가끔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잊지 못한다.

내가 정말 나쁜사람이라고 질나쁜 아이라고.

못박을것같은 표정.

말이라도 좀 해주지.

좀 덜 억울할 것같다.

 

그래도 나는 이만큼 커서.

나이가 들어서.

좋은 사람이 되야지.

더 나은 사람이 되야지.

하면서 철들어가고 있는데.

나의 커감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누군가의 기억에.

그때를 떠오르면. 

나는 그런 대접 받아 마땅한 애로 남아있을거같아서.

왠지 슬프기까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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